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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캐논, 니콘에 분노하기 전에 12 2009.06.20
  2. 토이카메라, 과연 반짝 지나치는 유행인가? 30 2009.04.17
캐논, 니콘에 분노하기 전에,
문화ㆍ예술적 토양을 비옥케 해야

1. 근성으로 살아가던 시절

70~80년대까지 한국복싱은 근성과 오기의 상징이었다

근성과 오기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것 처럼 대한민국이 굴러가던 시절이 있었지요.
학생들은 국민교육훈장을 달달외고, 새마을 운동 노래가 하루 일과의 시작이던 시절 말이죠.
근성과 오기가 얼마나 중요한 삶의 덕목이었냐면,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암울한 시절의 종말을 불러온 민주화 온동의 기저에 까지 오기와 근성이 깔려 있었을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말이죠, 지금은 좀 변했어요.
영화 넘버쓰리 영화에서 송강호가 줄기차게 외친던게 뭡니까.
근성, 아니던가요.
그러나 관객은 거기서 무엇을 느끼던가요?
코믹, 아니던가요?
근성과 오기가 코믹코드로 통하는 세상이 와버린 겁니다.
웃기는 일이 되어버린 겁니다.
물론 그 가치가 퇴색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가 주는 일반적인 통념이 웃음거리 정도에서 멈추었다는 뜻이겠지요.



2. 문제는 오기와 근성이 아니다

첫 Made in KOREA 카메라인 KOBICA

제가 뜬금없이 이런 포스팅을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다음과 같은 글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캐논, 니콘, 디까에 분노하다 - 하재근
무슨 내용인고 하니 한국의 정밀기술 산업 부흥이 절실히 필요하고 60~80년대의 대한민국이 올힌하다 시피했던 자동차, 조선, 화학, 전자, 철강산업 처럼 정밀기술 산업을 아주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지만 포스팅 내용이 별 생각 없이 그냥 읽어내려 가긴에 좀 껄적지근했습니다.
한국인의 심장 속에서 오기가 사라져버렸다.
세종로에 다니는 일제차, 외제차를 밀어버리기 위해 독기를 품었던 것 같은 오기가 사라진 것이다. 돈 주고 외제품 사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디까들은 한가하게 영화의 품질을 논했고, 카메라 애호가들은 카메라의 품질만을 논하고 있다. 국적을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 중략-

돈 주고 사서 쓰는 것 말고, 우리의 정밀기술, 우리의 부품기술, 우리의 영화 특수효과 같은 고부가가치 기술과 지식을 육성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인이 안정적으로 먹고 산다. 먹고 사는 문제에 안정성이 사라지면 한국은 영원히 정치적 안정을 찾지 못할 것이다. (80년대 경제호황 뒤에 민주화가 되고, 2000년대 민생파탄 뒤에 이명박 정부라는 역주행이 찾아온 것을 상기할 일이다.)
그러려면 과거의 오기를 되찾아야 한다. 길바닥에 외제차를 보며 ‘욱’했던 마음. 그 마음 그대로 길바닥의 캐논, 니콘을 보며 ‘욱’하고, <트랜스포머>의 대활약을 보며 ‘욱’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엔 외국 제품, 외국 영화의 품질을 찬양하는 것을 좌우파 모두 자랑으로 여기고, 젊은이들은 외제차나 동경하고 있으니 이 나라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 캐논, 니콘, 디까에 분노하다 - 하재근

과거, 삼성은 왜 미놀타의 카메라를 수입해서 파는 정도에서 만족해야만 했을까

뭐 욱하는 걸 느끼는 것 까지는 좋습니다.
사실 저도 사진을 찍기위해 카메라를 들 때마다 욱하거든요.
'왜 한국에는 이런 카메라가 없지?'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 별로 없을 겁니다.
그래서 욱하는 심정에 기술력을 발전시켜 정밀광학산업을 육성하자, 라고 외치는데서 그치고 만다면 그건 꽤나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 기술로 만든 최초의 한국 카메라로 기록된 코비카는 왜 더이상 발전하지 못했을까요.삼성은 왜 미놀타 카메라를, 대우는 야시카 카메라를 수입해서 파는 것으로 만족했을까요. 필름 시대가 끝나고 디지털 시대가 도래한 지금 왜 삼성은 펜탁스와 함께 카메라를 만드는 것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까요.
그건 바로 카메라건 IT건 소위 말하는 정밀산업 분야는 기술만으로 성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소위 말하는 소울, 영혼, 정신 뭐 그런 게 필요하단 말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 '소울'이 욱하는 마음과 오기, 근성이란 말은 아닙니다;;;)

솔직한 말로 지금 한국에서 유일하게 DSLR을 생산하는 삼성의 기술력이 아주 못쓸 정도는 아닙니다.
아니, 니콘과 캐논의 중보급기 기술정도는 충분히 쌓은 상태입니다. 문제는 소위말하는 플레그쉽 바디인데 그게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기술이 아닙니다.
독일의 라이카와 콘탁스 카피 카메라를 시작으로 50년 이상 카메라 기술을 쌓아온 일본을 당장 몇년안에 따라잡을 수는 없지요.
(니콘이 1:1 풀프레임 바디를 선보인 것도 근래의 일입니다. 캐논에게 한참이나 뒤쳐져 있었던 기술이라지요.)

우리 나라가 제대로 된 카메라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애석하게도 기술이 모자라서라고 딱잘라 말하기도 어렵고, 근성과 오기가 없어서는 더더욱 아닙니다.
그저, 근본이 안되어 있어서 그런 것일 뿐입니다.


3. 기본적인 문화ㆍ예술적 토양을 비옥케 하는 게 급선무

기술력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게 아님을 보여준 애플의 아이팟

무슨 일이든 근본이 되고 기본이 되어야 일을 시작할 수 있는 법입니다. 천자문도 떼지 않고 사서삼경을 어찌 읽어낼 수 있으며 구구단을 외지 않고 어찌 미분ㆍ적분 이야기할 수 있으며 ABCD도 모르면서 어찌 토익시험을 볼 수 있겠습니까.
하면된다! 기술력을 쌓자! 기술력이 진리!
이런 생각은 푸른지붕아래 사시는 어떤분의 논리와 너무도 닮아 있는 것 같아 겁나기까지 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지요. 카메라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정밀기술산업의 한 분야라 볼 수 있는 MP3 플레이어를 보자구요. 한때 한국의 MP3 플레이어 생산기술력 및 판매량은 세계 상위권이었습니다. 싸움이건 산업기술이건 선빵이 중요한데 한국이 그 기술분야에선 먼저 기술을 쌓기도 했고 말이죠. 그런데 어느날 아침, 정말 하루아침에 애플의 아이팟에 쓰러졌습니다. 그게 국민들이 근성이 없고 국산에 대한 애정이 없어서 나타난 결과일까요? 톡까놓고 말해서 MP3플레이어 만드는 기술이 애플에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더 냉정하게 말하면 아이팟의 음질이 국산 MP3플레이어에 비해 좋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지금과 같은 결과가 나타난 것일까요.
그건 바로 21세기 산업의 기본토양이 되는 문화ㆍ예술분야가 처참할 정도로 망가져있기 때문입니다. 삶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고기 좀 궈먹고 와인 좀 따라마시면 삶의 질이 높아지는 건가요. 그건 아니잖아요. 문화적인, 예술적인 수준의 질이 저 아래 바닥에서 기고 있는데 무슨 카메라 산업을 논하고 정밀산업분야를 논합니까. 그렇잖아도 문화ㆍ예술 판이 다 쓰러지기 일보직전인데 높으신 분께서는 한예종을 아예 죽이려고 작정을 하셨고 말이죠. 나라 꼴이 요모양 요꼴인데 기술력만 쌓자고 소리쳐봐야 공허한 외침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정밀기술분야 기술력은 생각만큼 떨어지지 않습니다. 일본이 만랩찍었다 치면 한국은 한두 레벨 아래 정도라고 봐요. 문제는 그 두칸정도의 레벨을 따라잡기 위해서 허구한날 마을 근처 찌질한 몹들 족쳐가며 노가다만 하고 있다는 건데, 그래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삼풍백화점은 기술력이 모자라서 무너진 건물이 아니다

정부가 정밀기술분야의 기술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돈을 퍼다 날라봐야 지금의 자동차산업꼴 밖에 나지 않는다고 봐요. 고만고만하게 적당히 팔아먹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절대 세계 최고는 될 수 없습니다. 아니, 정밀산업분야는 적당히라는 말이 통하지 않으니 맨날 죽쓸 수 밖에 없습니다.

21세기는 단순히 기술력 운운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작금의 대한민국 산업이 이모양 이꼴인 근본적인 이유는 애석하게도 오기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이 없는, 그저 외형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만 추구한 한국 근현대사의 우울한 결과물일 뿐입니다. 다리가 가라앉고, 백화점이 무너진 이유는 건축기술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건축을 대하는 기본적인 마인드가 저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마인드가 제대로 박혀있었야 합니다. 그건 근성과 오기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에서 제대로된 카메라가 나올 확율은 얼마나 될까요. 글쎄, 전 아직 한참은 멀었다고 봅니다. 카메라처럼 보이기만 하는 기계를, 사진처럼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기계를 대충 만들어 내기야 하겠지요. 그런데 과연 그런 기계를 카메라라고 칭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런 기계가 세계시장에서 날개 돋힌듯이 잘 팔릴 수 있을까요? 아니, 하다못해 우리나라 국민들이 얼마나 속고 사줄까요? 니콘과 캐논의 카메라를 보며 분노하기 전에, 기술력 운운하기 전에 사진과 문화ㆍ예술에 대한 기본적인 토양이 좀 더 비옥해지길 바랄 뿐입니다. 그게 과한 욕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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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신 DSLR에 '토이카메라' 효과가?

최근에 조금 심도깊게 고민해볼만한 질문을 들었어요.
'토이카메라, 작년 쯤 부터 유행이었던 것 같은데 그 유행이 언제까지 계속 될 것 같으세요?'
라는 질문을 들었는데 것 참, 그냥 흘려들을 질문은 아닌 것 같더라구요. 하긴, 다들 궁금해 할 법도 합니다. 최신 DSLR에 토이카메라 효과 같은 메뉴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시대가 왔으니 말이죠.

세상에나. 언제나 선예도가 어떻고 화질이 어떠하고 화소는 또 얼마나 높은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광고하는 디지털 카메라들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토이카메라'효과를 집어 넣었다는 군요. 실제로 그 카메라를 써보지 않았지만 기사를 보면 주변부를 어둡게 만드는 비네팅 효과를 주는 것 같은데 말이죠. 그건 기존의 디지털 카메라들이 지향하던 것과는 정 반대방향에 있는 기능이 아니던가요? 비네팅은 싸구려와 저질을 지칭하는 또다른 단어 아니던가요?

어떤 기업이든 사용자의 니즈를 파악하고 트렌드를 유심히 살펴본 뒤에 상품을 내놓기 마련입니다. 카메라 회사라고 별다를 건 없겠지요. 즉 디지털 카메라에 '토이카메라' 효과를 떡하니 집어 넣었다는 건 많은 유저들이 그 기능을 원하고 있거나 원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겠지요. 이쯤 되면 우리는 토이카메라가 '유행'이구나, 라고 쉽게 유추하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 '토이카메라'는 그저 잠깐 나타났다 사라질, 한번 '빵'하고 터지고 말 단순한 유행일까요?





:: 토이카메라는 LOMO LC-A의 아류?
티스토리 사진편집 화면싸이월드 사진편집 화면

토이카메라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홀가

위의 두 화면은 각각 티스토리와 싸이월드의 이미지 업로더 편집창입니다. '로모'라는 글자가 눈에 띄는군요. 예, Lomo LC-A로 대표되는 비네팅 효과를 인위적으로 덧씌우는 기능입니다. Lomo LC-A, 토이카메라 등의 특징인 비네팅 현상을 웹에서 손쉽게(그러나 어설프게) 구현할 수 있도록 한 것이지요. 이미 다들 알고 있겠지만 국내에서는 Lomo LC-A에 덕에 비네팅이라는 단어가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수많은 말들이 오고 갑니다. 성능이 떨어지는 렌즈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성능이 문제가 아니라 이미지가 주는 느낌이 중요하다 등등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구태의연한 설전을 벌이고 있지요. 사실 전 그런 문제로 왜 싸워야 하나 싶어요. 다 사실이잖아요. 렌즈의 광학적 성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고, Lomo LC-A가 만들어주는 이미지가 독특하고 매력적인 것도 사실이잖아요.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격이요? 가격이 문제가 된다면 안쓰면 그만이고 가격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왜 다른 사람의 취향을 무시하거나 깎아 내려야만 하는지 모르겠군요. 이야기가 잠시 엉뚱한 곳으로 흘렀네요. 다시 토이카메라로 돌아가서 말이죠,

토이카메라는 과연 작년 즈음해서 갑자기 폭발한, 그저 스치고 지나갈 유행일 뿐일까요? 글쎄, 저는 그렇게 쉽게 단정짓기 힘들다고 봐요. 그저 지금의 상황들만 놓고 보면 정말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듯 보일 수도 있고, 토이카메라들이 Lomo LC-A의 저렴한 대안인 것 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면 그렇게 간단히 결정지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수 있어요. 국내의 토이카메라 1세대로 칭할 수 있는 유저들은 국내에 Lomo LC-A가 막 상륙하던 시절부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Lomo LC-A 뿐 아니라 홀가, 다이아나(복각이전 오리지널 모델), 러시안 토이카메라 등을 두루 섭렵하며 점점 매니아층을 늘여나갑니다. 90년대 중후반의 일입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Lomo LC-A는 로모그래피의 홍보 공세로 급격히 시장을 넓혀나갔고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지금,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많은 토이카메라들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LOMO LC-A의 대중적 인기는 홍보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이쯤에서 우리는 일부 호사가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이 과연 신빙성이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과연 그들의 주장처럼 토이카메라는 Lomo LC-A의 아류, 혹은 적자 쯤의 위치에 놓인 소위 말하는 어설픈 '짝퉁'에 불과할 뿐일까요? 사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무리는 아닙니다. Lomo LC-A가 대중적으로 먼저 알려졌고 그 이면에는 선동적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홍보 공세가 있었기 때문이죠. 사실 초기의 토이카메라 1세대들은 딱히 특정 토이카메라만 골라서 사용했다고 보기 힘들어요.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주는 카메라들을 가리지 않고 사용했습니다. Lomo LC-A가 아니더라도 독특한 느낌의 비네팅과 주변부 화질저하현상을 지닌 토이카메라들을 두루 사용했던 것이지요. 다만 로모그래피의 홍보 공세(?) 때문에 몇년간 균형있게 시장이 발전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봐요. 그리고 이제야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독특한 이미지들을 만들어주는 다른 카메라들도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지요. 즉 단순히 Lomo LC-A의 아류다, 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베를린장병이 무너질 것을 예측하지 못한 것 처럼, 우리는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세계에 살고 있다

우리는 가끔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라는 명제에서 곤혹스러워 하지만 어떤 일이건 그 근원이 되는, 우선되었던 일이 있게 마련입니다. LOMO LC-A의 인기가 로모이즘이니하는 말들로 포장되고 그 자체로써 온전히 오리지널리티를 획득한 문화인양 자리잡고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LOMO LC-A 이전에, 토이카메라들이 지금의 위치를 가지기 이전에 그 문화적 양분이 되고 토대가 되는 근본적인 문화현상이 있었다고 보는 게 옳습니다. Lomo LC-A의 대중적 인기가 아무리 홍보의 승리라 하더라도 설득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위치까지 올 수 없었겠지요. 그렇다면 그 설득력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요?

모더니즘이니,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하는 골치아픈 문예사조사를 들먹거리지 않겠습니다.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이야기 해보자구요. 냉전 이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정말이지 어떻게 정의내려야 될지 모를 정도로 급격히 변화해갑니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가를 명확히 할 수도 없는 국가간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어느날 갑자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하루 아침에 누군가는 로또로 부자가 되고, 누군가는 급락한 주식에 목을 메고 마는, 정말 당장 1분 1초도 쉽게 내다볼 수 없는 세계속에 살게 된 것이지요. 이러한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과연 어떤 사진을 찍고 싶어했을까요. 정확하게 프레이밍을 하고, 노출을 정확히 재고, 딱딱 칼같이 맞아 떨어지는 사진을 찍고 싶었을까요? 이토록 불확실한 것들로만 가득찬 세계에서?

1960년대에 만들어진 DIANA 오리지널 모델


젊은이들은 오래전에 만들어졌던 DIANA라는 어설픈 중형카메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와 비슷한 형태의 홀가와 같은 카메라뿐 아니라 구소련에서 생산된 콤팩트 카메라에도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그러한 카메라들이 지니는 특성은 최신 카메라들에 비해 당최 결과를 제대로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그 카메라들이 만들어주는 이미지는 명징한 것 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렇게 기존의 이미지와 차별성을 지니는 카메라를 사용하는 유저들이 점점 늘기 시작했고 1990년대 초반 오스트리아의 몇몇 젊은이들은 그것이 훌륭한 사업 아이템이 될것으로 판단, Lomography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Lomo LC-A라는 구소련에서 생산되었던 콤팩트 카메라를 판매하게 됩니다.(첨언하자면 Lomography와 LOMO는 별개의 회사입니다.)

2009년 현재 토이카메라의 인기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은 게 아니라는 걸 말하기 위해 조금 많은 이야기를 해버렸나요? 예, 그렇습니다. 토이카메라의 인기는 Lomo LC-A의 유명세에 편승해 급작스레 만들어진 것이 아니란 거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시대의 커다란 문화속에서 조금씩 뿌리를 뻗어왔고 이제야 조금씩 잎을 틔우고 있는 상황이랄까요. Lomo LC-A건, 토이카메라건 대중에게 이만큼 알려지고 수많은 유저를 양산하고 있다는 건 그 카메라들이 지금 이 시대의 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걸 방증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 것이죠.



:: 당신의 일상담기, 비록 내일을 모를지라도

제가 조금 쓸데없이 복잡하게 이야기를 한 것 같군요. 불활실성이니 어쩌니 해도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어느 시대에 살았건 당장 내일일을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겠지요. 물론 예측범위라는 것이 있다지만 사람 사는 게 어디 자신의 의지대로, 예측대로만 굴러가던가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이 순간이 중요한 거죠. 1분 1초가 모여 하루가 되는 거 잖아요.

토이카메라는 바로 그 순간을 기억하게 해주는 데 훌륭한 도구가 아닐까 싶어요. 기계적 특성상 조금의 제약이 있다지만 셔터를 누르기 위해 복잡하게 생각 할 필요도 없고 어디든 부담없이 들고 나갈 수 있고 금전적인 부담감도 덜한 편이고. 일상을 담아내기에 토이카메라만큼 편하게 집어들 수 있는 카메라는 드문 것 같네요.

예, 비록 내일 당장 세계의 종말이 오건 로또 대박을 맞건간에 저는 소소한 일상을 사진으로 담아내렵니다. 그리고 가방한켠에는 항상 토이카메라 한대가 들어 있겠지요. 여러분도 가방에 토이카메라 한대 대충 구겨 넣고 다니면서 순간순간의 일상을 담아보시는 건 어떠세요?



2009.4.17
East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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